김알콜 - 키네유나 / 체육대회
타앙, 맑은 하늘에 울려 퍼진 폭죽의 소리에 학생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였다. 힘든 강의들 사이에 있는 단 하루만의 달콤한 시간인 체육대회의 날이다. 분명 기쁜 날이 틀림없다. 이 소녀를 빼면 말이다.
“하아… 집에서 쉬는 게 더 좋은데.”
“유나, 또 그 얘기야? 놀아야지. 내일부터는 또 1교시부터 강의라고?”
윽, 짧게 앓는 소리를 낸 소녀가 위를 바라봤다. 뜨거운 햇빛을 가린 제법 반반하게 생긴 얼굴과 연보라색 눈. 시원하게 깐 앞머리. 소녀의 소꿉친구인 키네시스였다.
“차라리 수업이 더 좋아. 이 더운 날에 밖에 앉아있으라고? 출전 종목도 없단말야.”
“그럼 우리 유나는 나를 응원하면 되는 거잖아?”
제 앞에서 능글맞게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자니 뺨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느낌에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뭐, 뭐야! 내가 왜 네 응원을 해야 하는 거야. 바보 같아. 쏘아붙이듯 말을 뱉어놓고는 저도 조금 신경 쓰였는지 곁눈질로 소년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응원 해줄 거죠 우리 공주님?”
“누가 공주님이란거야! 정말, 바보 아냐?!”
빨리 가서 준비운동이나 하라고. 양 팔을 뻗어선 소년을 살짝 밀어냈다. 힘없이 툭하니 밀려난 소년이 화사한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피식 웃곤 소녀의 손에 물병을 들려주었다.
“목마르면 마셔. 참고로 내가 마시던 거다?”
필요 없어! 빨리 가라니까?!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년에게 소리쳤다. 네네 알겠습니다. 뒤돌아서선 제 손을 살랑 흔들어보였다.
[다음 종목으로 계주가 있겠습니다. 마지막 종목인 만큼 힘을 내 주시길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하나 둘 준비를 하고는 제 트랙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제 나름대로의 수단을 사용했다.
“키네시스,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는 소년이 답답한 건지, 한편으로는 걱정한 것인지 그의 어깨를 손으로 톡톡 쳤다. 응? 하고 돌아본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 유나 왔구나? 역시 유나를 보면 긴장이 풀린다니까.”
“그, 그런 말 들어도 전혀 안 기쁘고…”
“달리기엔 적당한 긴장감도 필요하지만.”
“정말, 알고 있다고!”
한참동안을 웃다 소녀의 보랏빛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자자, 이제 날 응원해주러 가야지 유나? 너무 제멋대로야 키네시스. 붉은 뺨을 복어마냥 부풀리곤 소년을 빤히 바라봤다. 피식, 작게 소리 내어 웃곤 손을 꼭 잡았다.
“키네시스, 열심히 하고 와.”
“당연히 그래야지. 자자, 시작한다? 유나.”
걱정 반, 설렘 반을 안고선 제 자리에 돌아가 소년을 바라봤다. 뜨거운 햇빛에 지쳐가는지도 모르고 소리치는 인파속에 소녀가 크게 외쳤다.
“힘내 키네시스!”
소년에게 닿은 것일까.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선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누군데.”
스타트를 알리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단 1초라도 늦어선 안 돼. 제게 다가오는 주자가 손을 뻗어 회색 배턴을 건네주었다. 수고했어? 라며 웃어주곤 바통을 받아들었다. ‘자, 이제 가볼까?’ 주변의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미미하게 울리는 소리에 소녀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네가 더 긴장하면 어쩌자는 거야, 유나.”
속도를 더욱 높였다. 결승선이 눈 앞이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곤 결승선을 알리는 노란 끈을 통과했다. 서울즈 학과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교수인 하얀 마법사는 언제부터 나와있던것일까, 미소를 지으며 유나에게 말했다.
“유나양의 소꿉친구는 재주가 참 많아요. 친구가 이겼잖아요? 축하하러 가봐요.”
소년은 금세 제 학우들에게 둘러싸였다. 칭찬들에 머쓱은 듯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 유나! 보랏빛 머리카락이 희미하게 보이자 소녀의 이름을 크게 불러댔다.
“바, 바보야! 큰소리로 부르지 말라니까!”
“우리 유나가 응원해줘서 이겼는데? 착해라. 안 울고 얌전히 있었네.”
누가 운다는 거야. 중얼거리던 소녀가 키네시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잘했어 키네시스.
“그것뿐이야?”
“운동장 한복판에서 뭘 바라는 거야! 돌아갈래.”
기다려 유나! 싫거든? 체육대회의 막이 내리고 학생들이 모두 돌아갔다. 어떤 그룹은 근처에 있는 주점으로. 어떤 그룹은 홈 파티를 하러 흩어지는가 하면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유나, 이제 집에 들어가야지. 일어나, 밤이라니까?”
으응, 조금만 더 자고 싶어. 뒤척이던 소녀가 키네시스의 목소리를 듣곤 재빨리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제 몸을 살포시 덮은 키네시스의 얇은 셔츠를 매만지다 다시 소년의 무릎을 의지해 누워버렸다.
“쓰다듬어줘?”
“하아?! 누가 쓰다듬어달랬….”
“그럼 일어날까?”
이거 놀리는 거지? 뾰루퉁한 얼굴로 소년을 올려보더니 눈을 살짝 감았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 유나가 원한다면 그러자. 내일 1교시부터 수업이 있는 것도 잊은 채 밝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본 하얀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1교시부터 졸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