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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링 - 헨리벨 / 동물원에서 찾은 것

 

 어린 시절부터 너는 다른 사람들과 남달라보였다. 동물원으로 소풍 가서 재규어 등을 마주할 때면 눈빛이 달라졌다. 그저 구경만 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아니라, 정말로 한 명의 사육사가 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모습의 네가 언제나 좋았다.

 

[저기 봐! 날카로운 눈매랑 발톱,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아?]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저런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육사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그래?]

[응, 두고 봐! 난 꼭 그런 사육사가 되고 말 거야.]

 

-

 

 요 근래에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눈동자를 빛내며 블랙잭을 바라보던 너, 그걸 지켜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나. 돌이켜보니 너와 나는 친구로서 10년 넘게 지내왔던 사이였다. 게다가 같은 고등학교를 입학 및 졸업하고 난 후, 같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만으로도 모자랐던 것일까. 이제는 꿈에서까지 그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물심리학과를 전공하는 그 녀석과 달리 평범한 공과대학에서 생활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주어진 과제 덕분에 흔히 말하는 ‘멘탈붕괴’를 맛보게 되었다. 문화체험이란 교양수업에서 소풍 가고 싶은 장소를 선택해서 다녀온 감상문을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왜, 왜 하필이면 소풍 가고 싶은 장소인 거냐! 가뜩이나 꿈에서 자꾸 나타난 그 녀석 때문에 심란하던 참인데. 어떻게 할지 중얼거리며 고민을 하던 찰나였다.

 

“하, 이걸 어떻게 하냐고. 그냥 같이 가자고 말해볼까. 에이, 아니야. 그 녀석이라면 뭐 하자는 거냐며 오해할 게 뻔할 거야…”

“응? 뭘 같이 가자고 말해?”

“뭐긴, 당연히 동물원이지… 헉, 벨?!”

“왠 동물원-? 뭐야, 헨리테. 동물원에 관심 하나 안 가지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진짜였다. 그러고 보니 수업이 하루 종일 있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말하던 그 녀석 ‘벨’이 나타난 줄도 모르고 답하고 있던 나는, 너무 놀라서 일단 쿵쾅거리는 심장부터 진정시켰다. 다행히도 내 본심을 눈치 채지는 못한 것인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뭐냐고 묻는 벨이었다.

 그냥 뭐, 소풍 가고 싶은 장소 다녀오고 쓰라는 감상문 때문에.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짜악- 손뼉을 마주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걸 보아하니, 딱 봐도 같이 가고 싶다는 의미.

 

“같이 가자는 거야?”

“역시 헨리테라니까? 며칠 전에 교수님께서 현장실습 할 동물원에다가 이력서 넣어보라고 추천해주셨는데, 합격했더라구! 그래서 실습면접 보러 가는 거야. 그 후에는 동물원사육사로 갈 참이니까.”

“진로를 확실히 정한 것 같네. 잘 됐다.”

“너는?”

“글쎄. 난 아직.”

“뭐야, 시시하게. 그래서 언제쯤에 갈 건데?”

“다음 주 금요일에 제출이니까 그냥 바로 해버리려고. 미뤘다가 저번처럼 지각 제출하고 싶지는 않아. 그 교수님 성격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그럼 이번 주 토요일 11시에 동물원 입구에서 만나자!”

 

 결국 얼떨결에 약속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상황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애초에 동물원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말걸. 그렇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동물원 매표소 앞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기다리고 있던 그 때, 벨이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깔끔한 블라우스에 검은색 스키니진, 단정하게 묶은 머리를 보아하니 내가 알던 그 천방지축이 아니었다. 멍하니 서서 보게 될 법한 모습이랄까. 뭐해, 안 가? 머리가 헝클어진 것인지 다시 메고 있던 벨이 내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묻는다. 아차-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럼 난 면접 보러 다녀올게. 있다가 봐.”

“잘 다녀와라.”

 

 벨이 자리를 떠난 후 혼자 남겨진 나는 나무를 오르는 재규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실은 과제 때문에 온 거라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동물원을 둘러보다가 재규어와 눈을 마주친 순간, 10년 전 이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버렸으니까.

 언제였더라, 처음으로 알고 지낸 게. 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으로 만나게 되었었지. 그냥 지나가려던 나를 부르며 먼저 자기소개를 건내던 모습이 생각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밝으면서도 오지랖 넓은 성격은 여전했다. 어린 시절 소심하기만 했던 나는 너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때부터 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리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것을 동물원에서 찾아낸 듯한 이 느낌은 뭘까.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벨이 총총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 합격했어!”

“축하해. 뭐, 나도 하나 정도는 찾았으니까.”

“응? 무슨 말이야, 그게?”

“아아- 별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뭐야! 빨리 알려달란 말야!”

 

 나는 궁금하다고 소리치며 뒤쫓아오는 벨을 따돌렸다.

미안하지만, 벨. 지금은 절대로 알려줄 수가 없어. 내가 이 동물원에서 이제야 찾아낸, 너에 대한 생각을 확실히 하고 말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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