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람 - 팬텀아리 / 입대 전야
대부분의 과목이 시험을 마치고 종강이 코앞인 어느 6월 중순, 그날따라 학교가 온통 떠들썩했다. 어떤 묘한 소문이 돌았던 까닭이다. 그 진원지는 학생용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한 게시글로, 전교에 잘생기고 유쾌하기로 소문난 한 학생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짤막한 소식이 담겨 있었다.
야, 군대야 누구나 가는 건데 걔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 부루퉁하니 입을 댓 발은 내밀고 투덜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걔 아니면 앞으로 누가 월요일 아침에 힘내라고 그렇게 상큼하게 웃어주겠어! 무슨 낙으로 학교에 다니냐며 서러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상 초유의 주목을 이끌고 캠퍼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당사자는 종강과 동시에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아리아아아아….”
“네, 팬텀. 듣고 있어요.”
아리아는 절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고 애써 웃는 낯으로 팬텀을 마주했다. 팬텀은 벌써 잔뜩 취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흐느끼고 있었다. 세어 보니, 둘이서 마신 것이 벌써 일곱 병째였다. 다만 우스운 것은 소주가 아니라, 맥주였다는 점일까.
“나 가면 혼자서 외로워서 어떡해, 우리 아리아….”
“…팬텀, 취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어요.”
“싫어, 아리아 계속 볼 거야….”
술이 약한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심각하다. 그가 마신 것은 고작 세 병이나 될까, 이렇게까지 취해 사리판단을 못 할 정도라니. 버리고 가자니 무슨 짓을 저지를 줄도 모르겠고, 한동안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측은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아리아는 한참 동안 그냥 가버릴까, 말까를 속으로 반복하며 한숨뿐이었다.
“자꾸 울지 마요, 뚝.”
“나 가면 아리아 외로워서 어떡해애애….”
순전히 핑계임을 알았지만, 아리아는 팬텀의 고수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능만 하다면 보내기 싫은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1년이 넘는 시간을 떨어져 보낸다니 불안하기도 불안했고,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군대 관련 이야기도 진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아리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팬텀.”
“응.”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과도 같은 목소리에 아리아는 픽 웃음을 흘렸다. 팬텀을 약하게 흔들어 일으킨 뒤, 아리아는 팬텀의 오른손을 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편지 자주 쓸게요.”
“응.”
팬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처럼 고개가 푹 앞으로 꺾였다가 한 박자 늦게 올라왔다.
“면회도 자주 갈게요.”
“응.”
시험 기간 내내 팔자에도 없던 군대에 대해 조사하느라 밤을 새웠던 기억이 톡,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리아는 쓴웃음을 삼키고 팬텀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
“그러니까 내 걱정은 말고, 조심히 다녀와요.”
“….”
팬텀은 대답 없이 마지막 한 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아리아가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이미 알코올로 절어버린 몸에 또 알코올을 투입하다니. 아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팬텀을 흘겨보았지만, 팬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마 그런 줄도 몰랐을 터였다.
“약속…, 딱 하나만 더 해줘.”
“뭔데요?”
팬텀은 아리아의 손을 쓰다듬으며, 도저히 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진지한 눈빛으로 아리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리아는 그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팬텀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꼭…, 나 없어도 꼭 식사 제때 하고, 운동도 하고, 응? 꼭 건강하게 지내야 돼.”
“…알았어요.”
끝까지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팬텀의 태도에, 아리아는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팬텀, 나 약속할게요. 꼭 편지 쓰고, 꼭 면회도 가고, 꼭 전화도 받고…. 꼭 몸 잘 챙겨야 돼, 아리아. 나 없어도 외롭다고 슬퍼하면 안 돼, 응? 약속이야….
…실상은 약 3달 뒤의 예정된 휴가 덕에 다시 볼 수 있는 사이였지만. 어린 것들이 남의 가게에서 꼴값 떠네…. 한참 전부터 이별 영화라도 찍는 양 굴던 두 취객, 아리아와 팬텀을 지켜보던 점원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