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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링 - 이카미하 / 작은 선율

 메이플 대학교의 모두가 다함께 즐기자는 뜻에서 총학생회가 주최한 ‘단풍제’가 올해에 들어 스무 번째를 맞이하였다. 이번 축제에는 지난번과는 다르게 특별히 올해에 개설된 밴드 동아리가 축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게 되면서, 기대를 잔뜩 모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밴드 동아리 부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삼아 베이스 기타를 독학해온 이카르트. 이미 동기들 사이에서는 연주가 수준급이라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도 워낙 말이 적은 편이다보니, 같은 과 동기들과 후배들의 생각은 ‘혹시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와 같이 언제나 거기서 거기였다. 이것이 이카르트에 대한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같은 과 학생들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타 학과는 오죽하겠는가. 그에 반해 정작 이야깃거리의 주인공인 이카르트는 오히려 무덤덤하다는 듯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카르트와 동기인 학생들 중 하나인 미하일이 동아리 실이 비치되어있는 학생관을 간 날이었다. 단풍제 준비 위원회에 소속되어있는 시그너스와 나인하트가 단풍제에 대한 건의사항 때문에, 총학생회실을 찾아갔었다. 수업시간 때문에 강의실로 돌아가던 미하일은 볼 일이 있다면서 시그너스와 나인하트를 배웅하고 난 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기타 음을 따라갔다. 미하일이 도착한 곳은 밴드 동아리실.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미하일은 생각보다 어수선한 주변 덕분에 이리저리 살피기에 바빴다.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 키보드, 마이크, 그리고 드럼까지 밴드 공연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비들은 모두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이 동아리가 올해에 신설되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무도 없는 건가? 갸웃거리며 여기저기 살피던 미하일은, 왼쪽 구석에 마련된 검은색 가죽 소파에 앉아서 베이스 기타를 조율하고 있던 이카르트와 눈이 마주쳤다. 헤드폰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다 들렸던 것인지 눈치 채고 있었다는 듯, 그는 미하일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에는 왜 온 거냐. 애초에 반겨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예상 외로 싸늘한 반응에 미하일은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미하일이 화를 내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며 자기 할 일만을 할 이카르트였다. 후- 한숨을 내뱉으며 팔짱을 낀 미하일이 그에게 물었다.

 

“뭐하고 있었던 거냐?”

“조율. 음이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줄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4개 밖에 되지 않는데도 다양한 음이 나온다니. 게다가 가까이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재밌어 보이는걸.”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니다, 아무 것도.”

“…한 번 연주해보던가. 가르쳐줄테니까.”

 

 그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아웃사이더로 찍혀있던 이카르트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였다. 궁금해 한 적 없다면서 툴툴거리던 미하일은 어느 새 이카르트의 베이스 기타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이카르트가 옆에 나란히 앉은 채 이것저것 알려주며 도움을 주자, 미하일은 아하- 깨닫고서 기타를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은데. 미하일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이카르트가 가까이 다가가서 위치를 잡아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쪽에다가 검지랑 중지를 올려두고, 두 번째 라인을 팅겨봐.”

“…어디라고?”

“이쪽. 아니, 조금 더 아래로.”

 

 그렇다고 이건 너무 가깝잖아! 왼쪽에서 그에게 한 뼘 더 다가온 이카르트한테서 숨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이카르트의 숨결이 계속 귓가를 간지럼을 태울 때마다, 미하일은 몸을 움츠리며 자리를 오른쪽으로 슬쩍 옮겨갔다. 눈치 빠른 이카르트가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어디 가냐고 묻는 그의 말에, 미하일은 움찔했다. 대놓고 숨 때문에 간지러워서 피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어?”

“자꾸 어디 가냐고.”

“내가 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그 상태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유지되는 듯 했다. 가르쳐주려는 의도로 다가온 이카르트에게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미하일의 신경전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이카르트가 먼저 됐다고 말하며 옆자리에서 또 다른 베이스 기타를 꺼내왔다. 도대체 여기엔 악기가 몇 개나 있는 거야? 미하일은 속으로 황당해하면서도 그새 손가락을 움직여 기타 음을 점검하고 있는 이카르트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의 연주에 따라 베이스 스타로부터 나온 음이 하나하나 이어져 작은 선율을 이루었다. 동아리실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노래가 미하일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 했다. 두 눈을 감으며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선율에, 미하일은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 그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그리움.”

“…”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즐거움 역시 함께 느껴져.”

 

 어떻게 이걸 한 번에 듣고 안 거지. 미하일의 대답을 들은 이카르트는 당황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부류에만 속해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던 간에 언젠가는 잊혀질 사람처럼,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음악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준 사람 역시 없었다. 그런데 선율과 박자만으로 자신의 음악에서 감정을 찾아내다니.

 

 가 뭘 잘못 말한 건가… 미하일은 이카르트의 표정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건지, 정적이 흐르는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조용히 베이스 기타를 내려놓고 동아리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미하일이 동아리실을 들린 후로부터 이카르트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새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주변에는 미하일을 비롯한 친구가 여럿 생기게 되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피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에는 이미 미하일의 탓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지만 말이다.

 

-

 

“오늘이 드디어 축제구나! 얏호-”

“…하. 청승맞게 뛰어다니지 좀 마라, 호크아이.”

“아까도 리허설 잘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이카르트.”

“무대 앞에서 보고 있을게-!”

 

이카르트는 격려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스테이지 아래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단풍제를 시작한다는 총학생회의 선언이 끝나자, 축제를 시작하기 위한 간주가 울려퍼졌다. 무대 밑에서 오프닝 준비를 마친 밴드 동아리가 올라오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스테이지 바로 앞자리에서 그들의 아니, 정확히는 그의 무대를 보기 위해 누군가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와- 역시 이카르트라니까?”

“실력 좋은 녀석이니까 처음이라도 잘 해낼 거라고 봐. 오, 저기 올라왔다!”

“그건 나도 동감이야.”

 

이리나의 말에 반응해주던 미하일이 무대 위에 선 이카르트와 눈이 마주쳤다. 이카르트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정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절대로 너를 위해서 연주하는 노래는 아니다, 미하일. 절대로 네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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