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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바 - 에반 / 새내기 개강

새내기 개강. 첫 강의에서 무슨일이.

 

겨울이 지나고 이제야 봄이 왔다는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제야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이 흩날렸다. 그리고 도심의 복잡한 거리를 해치고, 아직 그 인생에서 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정문 앞에 도착한 그는 빠르게 달려 온 것을 인증이라도 하듯이 숨을 헐떡였다.

 

“후아아….”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입시 생활을 끝마치고 드디어 그가 상상하던,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대학”이라는 곳에 오게 된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던 것일까. 지금까지 뛰어오느라 긴장되었던 몸을 풀 듯이, 그는 허리를 다시 한번 쭉 펴고 정문으로 보이는 문을 바라보며 팔을 쭉 벌려 외쳤다.

 

“드디어 도착했다아!!”

 

주변 사람들의 쳐다보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는 여전히 팔을 벌린 자세를 유지한 채로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곧 수업이 시작이지만, 그에겐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목에 걸려 있는 “16학번 신입생 에반”이라는 명찰이, 지금 그의 신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첫 등교라 떨리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될 거야...! 열심히 한다면...”

 

그렇게 한번 중얼 거리고는 벌린 팔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고 천천히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꿈꾸었던, 이른바 남들이 말하는 꿈 같은 “캠퍼스 라이프”에 대해 생각하면서, 아주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첫 강의가 있는 강의실로 향하였다. 이제 그가 마주하게 될 가혹한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산산히 부서지게 될 환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벚꽃이 핀, 아름답게만 보이는 대학교 캠퍼스를 빠르게 가로질러 갔다.

 

 

강의는 간단했다. 수의학과 담당 교수님의 인사, 그리고 과대 선출. 과대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담당 교수의 뭐든지 해 보는게 좋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 과대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의욕 있게 지원하였고, 과대로 선출 되었다.

 

“그럼 이번 신입생 과대는 에반 학생으로 하고…..”

 

담당 교수님의 오묘한 웃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무엇을 저질렀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 한 채로 천연스럽게 웃으며 앉아있었다. 그러는 사이 담당 교수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 주섬 꺼내려 하면서.

 

“그럼 과대도 정해졌으니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교수가 꺼낸 것은 정말 두꺼운, 그야말로 1000장은 족히 넘을 듯 한 책이였다. 그 후에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에반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 다음 수업까지 외워오세요. 전부다. 쪽지 시험으로 평가에 들어가는 과제입니다.”

 

에반 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과제야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이정도 양일줄은 몰랐다는 듯한 반응 이였다. 말 그대로 기대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온 몸이 굳어 가기 시작한 듯 했다. 그러나 운명은 에반을 더 괴롭힐 생각이였는지 교수는 더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까지 이 책에 대한 요약본을 써오세요.”

 

간 강의실에 흐르는 정적이 에반, 자신의 기분을 대변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에반의 표정은 이제 거의 울상이 되었다고 해야 할 수준까지 와버렸다. 교수는 좋은 대학생활을 보내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강의를 끝냈고, 에반은 모두가 강의실을 빠져 나갈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모든 환상이 깨져버린 듯, 그리고 이 많은 걸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하냐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생각해봤던 캠퍼스 라이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지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 둘 수는 없겠지…힘 내자…!”

 

그래도 이대로 주저 앉아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는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결의라도 다지듯이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시련은 모른 채 돌파할 구멍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서.

 

하지만 그 믿음은 가면 갈수록 부서질 것이란 것을, 그리고 수많은 과제와, 과대로서의 업무에 치여 나갈 것이란 것은, 그는 아직 이때는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다시금 교문을 들어설 때 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그는 강의실을 나섰다.

 

늘도 그의 운명을 몰라 주듯이 매우 화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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